▶ 창원의 유전자는 ‘창조’와 ‘도전’
박완수 시정을 되돌아보며 창원의 유전자는 ‘창조’와 ‘도전
우리 창원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그리고 창원인에게 면면히 흐르는 정신은 무엇일까?
역사학자들은 대략 신석기시대가 시작될 무렵인 기원전 6,000년경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는 동읍 주남저수지 인근 산남리 합산마을의 조개더미에서 채집된 빗살무늬 토기 조각을 그 예로 들고 있다.
그리고 창원에 본격적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1,000년경으로 추측한다. 서상동 남산유적을 비롯, 성산패총 유적의 최하층에 확인된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 등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대 무덤인 고인돌은 동읍 덕천리를 비롯 용잠리 일대와 시내 중심지의 상남동 등에 산재해 조상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다.
한편, 공단부지 조성이 한창이던 1974년 문화재관리국의 긴급발굴조사 결과 철기시대의 패총과 삼국시대의 성곽이 확인되었으며, 당시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각종 토기류와 철기류가 대량 출토되었다.
특히 이곳에서 야철 유구가 발견됨으로써 삼한시대 선인들이 땀 흘리며 철을 생산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를 통해 창원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계공업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각별한 인연을 강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창원은 남부지방의 중심부에 위치한 탓에 행정구역상으로도 주변과의 부침이 심했다.
삼한시대 변한의 일부 영토였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어느 국가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삼국시대에는 포상팔국 중 골포에 속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경덕왕 때 전국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여 창원은 의안군에 속하게 된다.
고려 충렬왕 때 의안을 의창으로, 합포를 회원이라고 개칭하여 각각 현령을 두었는데 이 둘을 합해 의창현이라 불렀다.
조선조 태종 8년 의창과 회원 두 현을 합하여 창원부로 승격, 이때 ‘창원’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옛날 두 현을 합칠 때는 군세가 강한 쪽의 글자를 먼저 넣게 되어 의창의 창(昌)자자 먼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선조 34년(1601)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되어 남부지방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당시 도호부는 전국 5곳 뿐이었다.
1895년에는 진주부 예하 창원군이 되었다. 이후 대한제국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인근 마산과 진해, 김해 등과도 행정구역상 부침을 거듭했다. 지난 1974년 건설부 고시로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되었고, 1976년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가 되었다.
이후 1980년 4월1일 마산시 의창동을 편입하여 18개 행정동의 창원시로 승격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으로 동면 북면 대산면 등 3개 면의 통합으로 시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1997년 대동제 시행으로 기존 24개동을 12개 동으로 통폐합하고 3개 읍면을 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원은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도무지 그 역사를 실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70년대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계공업도시로, 또한 국내 최초의 계획도시로 개발된 후 한국의 중심도시로 우뚝 서기까지 30년의 빛나는 성장에 가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창원인이게는 ‘창조’와 ‘도전’의 정신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최고도시를 만들었다. 창원은 삼한시대부터 철을 생산해 멀리 중국과 일본에까지 수출했다. 예로부터 생산 즉 ‘창조’의 요람이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산업화를 이루어낸 ‘도전’의 상징도시였다. 오늘날 ‘가장 살기좋은 도시’를 만든 바탕에는 바로 창조와 도전의 창원정신이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자치단체든, 국가든 도전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허허벌판이던 이곳을 기계산업의 중추도시를 만들고, 1인당 시민소득 3만 달러를 일궈낸 데는 시민과 기업이 도전 정신을 발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업사랑운동과 자전거 정책, 환경수도 프로젝트를 통해 국가정책을 견인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경쟁력 있는 도시로 우뚝 서게 된 것도 공직자의 창의력, 즉 창조의 정신이 바탕이 된 때문이다.
창원의 유전자는 ‘도전’과 ‘창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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